마약왕 이황순 호화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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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왕 이황순 호화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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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마약왕>은 마약도 수출하면 애국이 되던 1970년대, 근본 없는 밀수꾼이 전설의 마약왕이 된 이야기를 담은 영화다. 대한민국을 움직이는 권력자들의 이면을 리얼하고 짜임새 높은 스토리로 구성, 역대 청불 영화 최고 흥행 신기록을 세운 <내부자들>을 통해 연출력을 인정받은 우민호 감독의 3년 만의 신작이다.​

근본 없는 밀수꾼에서 전설의 마약왕이 된 이두삼 역은 <택시운전사> <변호인> <괴물>까지 대한민국 유일의 쓰리 천만 배우 송강호가 연기했다.

이두삼은 가상인물이다. 우민호 감독은 실제 있었던 1970년대 대한민국 사건을 바탕으로 이두삼이라는 인물을 만들어냈다고 했다.

그렇다면 '이두삼'의 모티브가 된 인물은 누구일까. 과거 뉴스를 검색해 보면 1970년대 마약왕이라 불리던 인물이 있었다. 바로 부산의 마약왕이라고 불리던 '이황순'이다.

이황순은 1980년 부산에서 검거된 우리나라 최대의 마약업자다. 당시 이황순과 일당은 부산 수영강 일대에 대저택을 매입하여 이곳에 비밀 마약 제조공장을 만들어 유통했다. 인근 주민들과 경찰의 눈을 피해오다 제보자의 제보로 경찰에 체포되었다. 당시 이황순은 자신을 검거하기 위해 온 경찰들과 군인들에게 실탄이 들어 있는 총기를 난사, 사회적 충격을 불러일으켰다.​

실제 이황순은 영화에서처럼 큰 돈을 벌었다. 영화에는 이두삼이 CCTV를 통해 외부를 관찰하는 장면이 나온다. 1970년대에 저런 장비를 집에다 갖췄을까 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장면이다.

실제의 이황순의 저택은 개집마저 호화스러웠다. 위의 <경향신문>은 "잘 훈련된 맹견 4마리는 대문 안 왼쪽에 붉은 벽돌로 지은 3평 규모의 호화 개집에 가두어 두었다가 밤에만 풀어"놓았다고 보도했다. 3평 벽돌 개집은 웬만한 개들이 꿈도 꿀 수 없는 곳이다. 개집마저 화려할 정도로 이황순 저택은 고급스러웠다. ​

뿐만아니라 실제 이황순 저택에는 고성능 음파탐지기까지 있었다. 위 <경향신문>은 "대문과 집 주변에는 고성능 음파탐지 시설을 통해 외부인이 집 주위 2미터까지 접근하면 안에서 발자국 소리까지 들을 수 있게 돼 있다"고 보도했다. 낙랑국 공주와 호동왕자 이야기에 나오는 자명고가 집 안에 있었던 셈이다.

하지만 영화와 다르게 실제로는 공개 활동을 어렵게 하는 제약이 있었다. 1970년대 후반에 이황순은 공식적으로 도망자였다. 금괴 밀수로 4년형을 선고받고 마산교도소에 수감됐다가 1년 만인 1973년 11월 13일 폐결핵으로 형집행정지 처분을 받았다. 그로부터 일주일 뒤 행방을 감추었다. 그 뒤 검찰의 추적을 피해 다녔다. 그랬기 때문에 집 밖에서 공개 활동을 하기는 힘들었다.​

실제 이황순이 체포된 것은 1979년 10·26 사태(박정희 암살) 직후인 1980년 3월 19일이다.

1979년 12·12 쿠데타로 군부를 장악한 전두환 장군은 사회기강을 확립하고 정부 권력을 획득할 목적으로, 1980년 1월 17일 내무·법무장관 및 계엄사령관 합동 명의로 '사회기강 확립대책'을 발표했다. 이 대책에 따라 밀수 범죄 등을 5대 사회악으로 규정하고 대대적인 소탕 작전에 착수했다. 이런 분위기에서 직격탄을 맞고 이황순이 몰락했다.

이황순은 정상으로 올라갈 때뿐 아니라 정상에서 내려오는 과정도 한 편의 영화 같았다. 영화 속 이두삼은 자택에서 군경과 총격전을 벌이다가 스스로 자해한다. 실제의 이황순도 군경과 3시간이나 총격전을 벌이던 중 자살을 시도하다가 체포됐다. 체포 당시 오른쪽 어깨에 총알 20알이 박혀 있었다고 한다. 1981년 4월 28일 이황순은 대법원 선고에 의해 징역 15년형을 확정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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