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려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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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정치

장기려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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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1년 평안북도 용천 출생으로 일제 치하에서 경성제국의전 (현 서울대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나고야 제국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 외과 의사가 된다.​

스승인 백인제가 대전도립병원의 과장자리를 추천했으나 일본인과 일하고 싶지 않아서 평양연합기독병원의 외과과장으로 일을 시작한다.
그후 평양의대, 김일성 종합대학 의과대학 교수로 재직하다가 한국전쟁 발발로 차남 장가용과 월남해서 부산에 정착한다.
독실한 개신교 신자였던 장기려 박사는 김일성을 수술해준 이력 덕분에 종교가 금지된 북한에서 예배를 보기도 했는데 이 덕분인지 월남한 이후에도 북한에 남은 가족들은 별다른 핍박없이 지낸 것으로 알려졌고 장남 장학용도 의대를 졸업하고 의사가 되었다고 한다. ​

부산에 정착한 이후에 빈민에게 무료로 진료하는 진료소를 세웠고 이 병원이 점점 커져 현재의 고신대학교 복음병원의 전신이 되는 복음병원을 설립했다.
이 외에도 여러개의 병원을 설립해서직, 간접적으로 부산지역의 오늘날 중대형급 병원에 영향을 끼쳤으며 병원이 없는 곳을 찾아다니면서 환자를 돌보았다. ​

장기려 박사는 국민 건강보험이 없던 시절에 부산지역 교회가 연합이 되어 만든 청십자 의료보험이라는 것을 만등었는데 이는 오늘날의 국민건강보험을 국가에서 만들때 이를 기초로 하고 참고해서 만들었을 정도로 선진적이고 앞선 제도로 평가 받는다. ​

한편 장기려 박사는 가난한 환자들에게 특히 각별히 대한 것으로 알려져서 많은 미담이 전해지고 있는데 자신의 봉급을 털어 주거나 자신에게 치료받길 원하는 환자가 있으면 다리가 불편한데도 불구하고 먼길을 마다하지 않고 갔다고 한다.
장기려 박사의 가족은 북에 남은 아내와 북한에서도 유명한 의사가 된 장남이 있고, 함께 남한에 내려온 차남 장가용씨도 의사가 되었으며 장가용씨의 아들 즉, 장기려 박사의 손자 장여구 씨도 서울 백병원 외과교수로 재직중이며 장여구씨의 아들도 중앙대 의대에 재학중으로 4대째 의업을 잇고 있다. ​

(손자 장여구 외과교수)
장기려 박사는 부산 복음병원 위의 작은 옥탑방에서 기거했는데 월남한 이후에도 많은 청혼을 받았으나 평생 북에 남은 아내와 가족들을 그리워 하면서 청빈하게 살다가 1995년 12월 25일 지병인 당뇨에 의한 합병증으로 사망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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