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양대군 세조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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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양대군 세조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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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제7대 임금. 묘호는 세조(世祖), 시호는 혜장승천체도열문영무지덕융공성신명예흠숙인효대왕(惠莊承天體道烈文英武至德隆功聖神明睿欽肅仁孝大王). 휘는 유(瑈), 자는 수지(粹之).

2. 요약

왕이 되기 전 군호는 수양대군(首陽大君)으로, 일반 대중들에겐 지금도 이 명칭이 더 익숙한 감이 없잖아 있다. 다만 알고보면 실제로 가장 오래 쓰인 군호는 수양대군이 아니라 그 전의 '진양대군(晉陽大君)'이었다.

1453년 계유정난을 일으켜 김종서를 비롯한 반대파들을 학살한 후 조카 단종에게서 사실상 권력을 빼앗고, 이후 '양위'(사실상 찬탈[9])를 받아 왕위에 올랐다. 이도 모자라 단종 복위를 노리던 사육신과 친동생 안평대군, 금성대군 등을 사사하고, 마지막엔 조카 단종마저 제거한 냉혈한 군주로 알려져있다. 1468년 지병으로 앓던 악성 피부병으로 병사했다. 당연히 조카의 저주란 말이 나돌기도 했다. 향년 52세.

긍정적인 의미든 부정적인 의미든 어쨌든 조선 왕조의 기반을 마무리한 군주. 평이 여러모로 엇갈리는 군주로 어떤 관점에 볼것이냐 에 따라, 폭군, 패륜아에서 왕권 강화에 노력한 노련한 군주라는 평까지 그야말로 다양한 평을 받고 있다. 다만 폭군 꼬리표를 떼려면 치세나 업적이 저런 행적을 무마할 정도로 출중해야 하는데 세조의 치세는 나쁜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훌륭했다고 보기도 애매해서 재평가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특히 조선 시대 통들어 가장 정통성이 부족한 군주였다는 점도 그의 평가를 낮추는데 일조하고 있다.[10] 실제 집권 과정의 정통성 혹은 정당성은 후대의 평가에 있어 상당히 중요한 요소이다. 특히 이 정통성의 문제는 세조 본인에게도 문제였겠지만, 이후의 국왕들에게 두고두고 발목을 잡으면서 조선의 왕권을 취약하게 만들어 신권이 왕을 견제하다못해 그냥 제대로 폭주하게 만들면서 조선을 쇠퇴시키고 끝내는 멸망으로 이끈 가장 큰 원인들 중 하나였다. 심지어 성종이나 선조 때도 왕권의 버팀목이 돼줘야 할 사람들 스스로가 왕권 제어가 극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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